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메이 시즈카 (문단 편집) == 생애 및 정치 활동 == [[히로시마현]] [[쇼바라시]]에서 출생.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고등학교 중퇴 후 상경해 도쿄도립 오오이즈미 고등학교[* [[가토 가쓰노부]]가 고교 후배이다.]로 편입해 졸업, 이후 [[도쿄대학]] 경제학부를 졸업한다.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가 [[안보투쟁]] 당시 경찰의 대처를 보고 분노해 경찰을 강하게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국가공무원 1종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면서 경찰이 된다. 합격 성적이 매우 좋아 다른 부처들의 스카우트를 받았으나 원래 목표하던 경찰이 되기 위해 경찰청에 들어간다.[* 사실 일본 관료 중에서도 권한이나 조직내 지위, 퇴임 이후 재취직 등 무엇 하나 꿇리는 게 없는 최고의 관료가 경찰 관료이기 때문에, 대부분 1종 시험 합격자가 경찰청 입청시험에 붙으면 절하고 들어가는 수준이다. 현재도 선호도가 [[재무성]], [[경제산업성]], [[총무성]] 등 최상위 부처와 비슷하다.] 이후 [[돗토리현]], [[사이타마현]]에서 경찰로 근무하다가 경찰청 보안국 공안제1과 이사관이 되는데, 보안국 초대 극좌사건 총괄책임자로 부임하여 [[아사마 산장 사건]], [[텔아비브 국제공항]] 총기난사 사건 등 당시 일본 연합적군에 의해 발생한 유명한 극좌 사건에서 경찰대응을 진두지휘한다. 이후 경찰청 장관관방 조사관을 마지막으로 1977년 경찰을 퇴직한다. 당시 계급은 경시정. 경찰 퇴직 후 퇴직금으로 정치인을 지망한 그는, 1979년 당시 정계 은퇴한 나가야마 다다노리 의원의 후임으로 구 히로시마현 제3구에 자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해 당선된다. 당선 후 의정활동 중 [[나카소네 야스히로]]의 [[야스쿠니 신사]] 참배 중지 등에 반발해 “[[대한민국]] 내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증은 없다. 단교해야한다.”라는 망언을 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. [[1994년]] 자사사 연립정권(自社さ連立政権)[* [[자유민주당(일본)|'''자'''민당('''自'''由民主党)]], [[일본사회당(1945년)|일본'''사'''회당(日本'''社'''会党)]], [[신당 사키가케|신당 사키가케(新党'''さ'''きがけ)]] 3당의 연립정권이다] 발족으로 출범한 [[무라야마 내각]]에서 운수대신으로 임명되어 처음 입각했다. 1996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처음 실시된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[[히로시마현 제6구]]에 출마해 당선되었다. 이후 [[제2차 하시모토 내각]]에서 건설대신을 역임한다. 1999년에는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한다. 그 뒤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만 [[고이즈미 준이치로]]에 밀려 2위에 그쳤다. 그러다가 지수회 회장이던 2005년 [[제2차 고이즈미 개조내각|고이즈미 내각]]이 추진하는 [[일본의 우정민영화|우정민영화]]에 반발해 자민당을 탈당하고 [[국민신당(일본)|국민신당]]을 창당한다. 창당 후 [[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 기업인 [[호리에 타카후미]]를 꺾고, 자신의 지역구인 히로시마현 제6구에 출마해 당선된다. 당선 후 국민신당 대표대행을 역임한다. 2009년 [[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도 국민신당 소속으로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해 [[민주당(일본 1998년)|민주당]]의 지지까지 받으면서 6만 표 이상의 표차로 당선되었다. 당선 이후 국민신당 대표를 맡는다. 이후 민주당, [[사회민주당(일본)|사회민주당]]과 3당 연립정권인 [[https://ja.m.wikipedia.org/wiki/%E6%B0%91%E7%A4%BE%E5%9B%BD%E9%80%A3%E7%AB%8B%E6%94%BF%E6%A8%A9|민사국연립정권(民社国連立政権)]]을 구성해 [[하토야마 유키오 내각]]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(금융담당, 우정개혁담당) 등을 역임한다. [[간 내각]]에서도 유임되었으나 2010년 6월 경 우정개혁 법안이 무산되면서 금융담당대신직을 사퇴한다. 이후 [[간 제2차 개조내각]]에서는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을 역임한다. 그러다가 [[노다 제3차 개조내각]]이 추진하는 소비세 인상 법안에 반대해 국민신당 대표로서 연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당내 연정 유지파와 대립 끝에 국민신당을 탈당한다. 탈당 후 무소속으로 활동하다가 ‘반TPP당’을 창당, 이후 감세일본, [[일본 미래당]], [[녹색바람]] 등에 합류하다가 다시 무소속으로 활동한다. 그러다가 [[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 은퇴했다. [[가와이 가쓰유키]]가 현금을 뿌린 사람 중에 가메이 시즈카의 비서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.[[https://www3.nhk.or.jp/news/html/20200711/k10012509491000.html?utm_int=news-new_contents_list-items_026|#]] 정계 은퇴 후로는 [[사토 고지]]를 지원하고 있으며, 사토 고지는 가메이 시즈카의 지원덕에 험지인 히로시마에서 야권 후보로 재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